초고가 아파트 대출규제에 셀러 파이낸싱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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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진형 기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초고가 아파트 거래에서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매매대금 일부를 빌려주는 ‘셀러 파이낸싱(Seller Financing)’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고강도 주택담보대출 규제로 은행 대출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매수인과 매도인이 직접 자금 거래를 하는 사례가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50억~100억원대 아파트가 거래되는 압구정 일대에서는 매매대금의 상당 부분을 기존 집주인에게 빌려 잔금을 치르는 방식도 확인됐다. 금융권 대출 한도가 제한된 상황에서 매수자는 자금 마련 시간을 확보하고, 매도자는 거래를 신속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점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압구정 50억원 이상 거래 11건 중 5건에서 확인
최근 압구정 일대 고가 아파트 거래에서 셀러 파이낸싱이 어느 정도 활용되는지는 등기부등본에서도 확인된다.
올해 8~10월 매매가격 50억원 이상인 압구정 아파트 거래 26건 가운데 소유권 이전 등기가 완료된 11건을 분석한 결과, 5건에서 매도인을 채권자로 하는 근저당권이 설정됐다. 전체의 약 45%에 해당한다.
나머지 거래 중 5건은 전액 현금으로 매수한 사례였으며, 1건은 시중은행에서 2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셀러 파이낸싱은 주택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매매대금 일부를 빌려주고, 해당 주택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채권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은행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매도인과 매수인이 직접 대출 조건을 협의한다는 특징이 있다.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은 통상 실제 대출금의 약 120% 수준으로 설정된다. 따라서 등기부등본에 기재된 채권최고액을 통해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빌린 금액을 추산할 수 있다.
실제 압구정의 한 아파트를 93억원에 매수한 사례에서는 채권최고액 51억6000만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됐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실제 차입금은 약 43억원으로 추정된다. 매매대금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기존 집주인에게 빌린 셈이다.
또 다른 55억9000만원짜리 거래에서도 채권최고액 39억3100만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되는 등 수십억원 규모의 매도인 대출 사례가 확인됐다.
김동현, 압구정 신현대12차 100억원 매입…약 50억원은 기존 집주인에게 빌려
셀러 파이낸싱 사례 가운데 주목받은 거래는 종합격투기 선수 출신 방송인 김동현 씨의 압구정 아파트 매입이다.
김 씨는 지난 9월 23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12차 전용면적 182㎡를 100억원에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잔금 지급과 소유권 이전 절차를 마쳤다.
해당 거래의 등기부등본에는 기존 공동 소유주 4명을 채권자로 하는 근저당권 4건이 설정됐다. 채권최고액은 각각 31억2000만원, 10억8000만원, 10억8000만원, 7억2000만원으로 총 60억원이다.
채권최고액이 실제 대출금의 약 120%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김 씨가 기존 소유주들에게 빌린 금액은 약 50억원으로 추산된다. 전체 매매대금 100억원 가운데 절반가량을 셀러 파이낸싱으로 조달한 것이다.
신현대12차가 속한 압구정2구역은 신현대9·11·12차로 구성된 재건축 사업지다. 1982년 준공된 기존 단지를 재건축해 지하 5층~지상 최고 66층, 14개 동, 2381가구 규모로 조성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압구정2구역은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으며, 2026년 7월 서울시 정비사업 통합심의에서 조건부 의결을 받았다. 향후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계획인가 등 후속 절차가 남아 있다.
고가주택 대출규제에 막힌 매수자…매도인 자금 활용
셀러 파이낸싱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고가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있다.
지난해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수도권과 규제지역에서 25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을 구입할 때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최대 2억원으로 제한됐다. 50억~100억원에 이르는 압구정 아파트를 매수하는 경우 은행 대출만으로는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구조다.
자금 여력이 충분한 매수자는 자기자금과 금융권 대출 외에 매도인에게 직접 자금을 빌리는 방식으로 부족한 잔금을 충당할 수 있다. 매도인과 합의한 대출기간과 이자율에 따라 자금 상환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압구정 일대 중개업계에서는 셀러 파이낸싱의 대출기간이 통상 6개월에서 1년 정도이며, 연 5% 수준의 이율이 적용되는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방식은 매수인에게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 매도인은 매매대금 일부를 빌려주고 이자수익을 얻는 동시에 매수인의 자금 부족으로 거래가 지연되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
매도인은 매각 속도, 매수인은 자금 마련 시간 확보
압구정 일대에서 셀러 파이낸싱이 활용되는 배경에는 매수자와 매도자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매수자는 대출규제로 부족해진 자금을 매도인에게 빌려 잔금을 치르고, 이후 정해진 기간에 걸쳐 상환할 수 있다. 특히 고가주택을 매수할 정도의 자산과 소득을 갖췄더라도 금융권 대출 한도에 막힌 경우 대안적인 자금조달 수단이 될 수 있다.
매도인 입장에서는 세금 부담 변화나 재건축 사업 일정 등을 고려해 거래를 빠르게 마무리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압구정2구역처럼 재건축 사업이 진행 중인 지역에서는 조합원 지위 양도 가능 시점 등 사업 단계에 따른 거래 조건도 매각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셀러 파이낸싱이 모든 매도인에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매도인이 매매대금 일부를 대여할 수 있는 충분한 유동성을 보유해야 하며, 매수인의 상환 능력과 대출기간, 이자율, 담보 설정 등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합법적인 거래 방식이지만 계약 조건과 세무 검토 필요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매매대금 일부를 빌려주고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방식 자체가 불법인 것은 아니다. 당사자 간 금전소비대차 계약과 담보 설정 등 관련 절차를 갖춰 거래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이재명 대통령 부부도 지난 7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아파트를 29억원에 매도하면서 매수인을 상대로 근저당권을 설정한 바 있다. 당시 매수인의 자금 사정에 따라 잔금 지급을 유예하는 방식이 활용됐다.
다만 거래 과정에서는 실제 대여금과 이자 지급 여부, 상환 조건 등을 명확히 정하고 관련 세법과 계약상 의무를 검토해야 한다. 특히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만으로 실제 대출금이나 거래의 구체적인 조건을 단정할 수는 없다.
집값 조정과 매수 기회는 별개…자금력에 따른 격차
최근 강남권 아파트 가격이 조정되는 흐름을 보이더라도 이를 실제 매수 기회로 연결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가격이 낮아져도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거래에 참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 대출 한도가 제한된 초고가 주택 시장에서는 보유 자산과 현금 동원 능력이 매수 여부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셀러 파이낸싱 역시 이러한 시장 환경에서 등장한 자금조달 방식 중 하나다.
결국 압구정의 고가 아파트 거래는 주택 가격뿐 아니라 자금조달 방식에서도 일반적인 주택시장과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대출규제가 강화된 상황에서 매도인에게 직접 자금을 빌릴 수 있는 거래가 늘어날 경우, 고가주택 시장에서는 매수자의 자금력과 매도인의 유동성에 따라 거래 기회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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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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